어린시절 엄마의 병환으로 인해
외가에서 자주 가서 지낸적이 있었다.
외갓집은 경상도 어느 오지인데,
버스에서 내려 몇시간 산길을 올라가야 했다..
(너무 깊은곳에 있어,
6.25전쟁때도 피해가 없었다고 할만치
평화로운 아주 작은 마을 이다.)
외갓집에 가면 나는 어느틈에
그 마을의 귀하신 손님이 된다.
마을어른들께선 도시에서 왔다고
뭐그리 궁금한게 많으신지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마을 아이들은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내 주위에서 떠나질 못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이란것을
외가에서 처음 접했고,
과자 사준다고 데려간곳은 가게가 아니라,
어느 집 안방에 놓여진 찬장 그것이 일종의 가게....^^
쑥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당에서
콩가루 덤뿍 집어넣어 손으로 밀은 칼국수를
멍석위에 앉아 먹는 기분이란...
그 어린시절 외가에서 생활했던 몇달은
참 많이 자유롭고, 행복했었다는 느낌이다.
어느 여름..
아이들이 수박서리를 가자며 불러냈다.
호기심이 생겼지만 무섭기도 했다.
한 아이가 말했다.
"니는 잘 못달리니, 만약 붙들리면
도망가지말고 밭옆의 개울에 엎드려있거래이.
그리고 절대 뭉쳐서 도망가면 안되고 전부 흩어져서 달려야 되는기라
알았째?"
내 가슴은 벌써
수박밭에 가기도 전에 기절할만큼 가슴이 쿵닥거렸다.
난 수박밭 밖에서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곤
눈을 반들거리며 서있었다.
여차하면
도망쳐야하니까...^^
헉
그런데 멀리서 아저씨의 호통이 들려왔다.
"이녀석들아"
에그
다리가 떨어지지않았다.
누가 내 다리를 당기는것처럼.........
아무리 당겨도 벌써 내 몸은 얼어 붙었다.
그 와중에 남자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도망가지말고 도랑에 엎드려 ~~~납작하게"
난 도랑으로 몸을 날려 숨죽이며 엎드려 있었다.
한바탕 아이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곤 조용해졌다.
그런데 그때..
내 목덜미에 투박한 손의 느낌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난 기절했다.
.
.
.
.
.
.
.
.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난 외삼촌댁 안방에 누워있는걸 알았다.
살며시 눈을 떠보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많은 눈동자들때문에
다시한번 기절할 노릇이였다.
걱정이 된 마음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몇명 친구들은 울어서 눈이 부어 있었다.
수박밭 아저씨가 더 놀라셨단다.
"기가 저렇게 약해서 어떻하겠노~"
하시며 외삼촌보고 산에가서 약초좀 캐어 다려먹이라는
당부를 하시곤 아저씨댁으로 가셨다.
들마루에 잘익은 수박 몇덩이를 두시고....
정말 인정많으신 분들...
그 기억은 두고두고 친구들에게 전해주는
내 단골 이야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외가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진지 오래이고,
일흔이 넘은 어른신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계신다.
이제 그분들마저 돌아가시고 나면 그 마을은 없어지겠지.....
외가를 갈려면 2시간도 넘는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산길가에 피어있는 꽃을 구경하며 올라가다,
열매들 맛을보고,
걷다 보면 목이 말라
아주작은 산개울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큰 잎에 담아서 먹기도 했다.
물먹는 나를 지켜보고 있던 친구들이
"내년엔 니 배안에서 뱀이 뛰어놀끼다"
하고 놀려서 큰소리로 울은 기억도 있다.
그 이듬해 봄까지 뱃속에 뱀이 있을까봐..걱정을 했었다..
아이들과 냇가에서 고기잡고.
한가로이 소 풀뜯이며 뛰어다니며 놀던
그 평화로운 여유들이....
그곳에서 느낀 인정 넘치는 사랑도 잊을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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