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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of my Life

금값이 '고공 행진'이라는데~

by 다희풀잎 2024. 11. 4.

 

 

 

시어머니께서 보석에 관심이 많으셨다.

막내인 남편과 결혼할 때 

시어머니는 원 없이 주고 그만큼 많이 받고 싶어 하셨다.

 

나도 딸 둘 키우고 있지만 과거 생각하면 

결혼할 때  서로 안 받고 안 주는 게 최고 좋은 것 같다.

 

 

 

남편과 나

어린 시절 친구로 지내다가 결혼했지만 사귄 기간이 없었다.

스물여덟 친구에서  연인으로 감정 변화 생겼을 때 바로 약혼, 결혼 

그야말로 정신없이 진행  

나는 대학 졸업 후 미술 학원을 운영 중이었고, 남편은 대학 휴학 후 군제대 그리고 절에서 공부 중인 상태였다.

능력, 환경 모든 조건은 생각 안 하고 심성만 보고..

 

 

지금도  공부한다고 절까지 가는 사람들 있을까?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 철없는 생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때 내 심정은 24시간 남편과 딱 붙어 일하는 직업이었으면 했다. 그만큼 우리는 떨어져 지낸 세월이 길었다.

 

첫 아이가 생기면서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했지만

대기업 자재부서 

하청업제 관리 

그 회사가 그런 줄 몰랐다. 엄청 바빠서 얼굴 볼 시간이 없어서 퇴근 후 늦은 밤

인근 고속도로 휴게소 데이트를 할 정도

갈 곳이 없어서

 

대학때는 주말부부

졸업 후는 월말 부부

직장을 들어가고 난 후에도 시간이 없었고

 

.

지금은 자영업 현재도 너무 바빠서 그때와 비교 달라진 게 없다.

그때는 월급 받고 지금은 본인이 월급을  주는  점이 달라졌을 뿐....

 

 

 

 

이야기가 비켜 갔지만~

 

다시 주제로 

 

결혼할 때 꽤 많은 예물을 받았다.

남편과는  어쩌다 얼굴을 보게 되니  틈만 나면 집을 비우고 여행 다니기  바빴다.

집에 둔 패물보관 함을  혹시 도둑이 가져갈까 봐 큰 언니집에 맡겼다.

언니네는 집 구조상 앞에는 상가 그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야만  집이 나오는데

상가에는 24시간 시어머니가 장사하시며  거주하시니 

도둑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집

 

.

.

 시어머니 상가에 늘 계시니 언니는 외출도 자유롭게 못해서

학교 다니는 어린 동생 자취방에 (내가 혼자 사는 집) 아이들 5명 데리고 놀다 가는 걸 그렇게 좋아했다.

편하니까

 

돌아가시기 전날 전화가 왔다.

내 큰 딸이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무렵

몸조리도 못했고 (언니의 두 딸들이 대학교 다녔는데 내가 신혼 때부터 데리고 있었다.)

늘 바쁜 일상 

 

 

"너한테 가면 몸이 나을 것 같아"

 

나는 '내일 당장 오라고 와!"

언니는 그날밤 세상을 떠났다.

 

형부에게 할 말은 너무 많지만 과거지사

 

 

 

 

집에서 장례 치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 패물을 챙길 틈이 없었는데 

언니집에 많은 사람이 들락날락  그 틈에 누군가가 가져갔다. 내 패물들을 

그게 벌써 30년도 더 지난 일이다.

 

가끔 누가 가져간 걸까? 모르는 사람이 와서 뒤져간 건 아닐 텐데

돌아가시면 남은 사람들이 짐 정리를 하는데 남겨놓고 간 조카들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형부가?

부족함이 없이 사시는 분인데?

 

의심하면 끝이 없고 심증만 있을 뿐...

 

내 것 가져가서 살림이 펴졌을까?

 

어쩌다 이렇게 '금 이야기' 나오면  다시 그때 일이 떠올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