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view

맛있게 읽는 57년 전의 일기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

다희풀잎 2021. 1. 22. 11:30

 

 

바람재 들꽃이라는 다음 까페의 정가네 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9년 만에 페이스북을 다시 시작하게 했던 글.

산골짝 촌놈 친구의 글이 책으로 엮여져 나왔습니다.

충청도 괴산군 청천면의 두메산골에 살던

내 좋은 친구 #이종옥의 어린 시절 이야기.

1960년대 그 어렵던 시절의 이야기.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의 삶이 무슨 자랑거리가 될까마는

배고팠던 그때의 얘기들이 전혀 구차하게 보이지 않고

유머 가득한 속에서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착한 친구의 글이 드디어 책으로 나왔습니다.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

 

나는 이 친구의 글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어서

페이스북을 다시 시작하여 페친을 최대한으로 늘렸습니다.

그리고 2019년 초부터 60회에 걸쳐 친구의 일기를 소개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시고 열렬히 응원해 주셨습니다.

제대로 된 멋진 책으로 내고 싶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글항아리의 #이은혜 편집장을 만났습니다.

일기의 주인공과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역 앞의 커피숍에서 편집장을 만났습니다.

 

며칠 뒤, 바로 출판의 승락이 떨어졌습니다.

삽화는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를 꿈꾸는

열정의 화가 #이재연 님께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진척되어 예쁜 책이 나왔습니다.

 

공개적으로 부탁드립니다.

어른이 읽어도 좋고 아이가 읽어도 좋습니다.

많이 사서 읽어주세요.

그리고 공유해서 널리 홍보도 해주세요.^^*

아, 정말 기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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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책 속의 글 하나를 소개합니다.

이종옥 친구는 바로 우리 카페의 운영자이신 '산골짝'님이랍니다.)

 

* 촌놈 일기 - 술지게미

 

산골 마을 겨울의 짧은 해가

서산을 넘으려 할 때쯤에야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집에 왔다.

마당을 들어서니 집안 가득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며칠 후 할머님 생신이라고 어머님이 술 조사꾼 몰래

윗방에 단지를 들여 놓고 담군 술인데

어제부터 술 냄새가 방안 가득하더니

오늘 부엌으로 내다 거르고 계신다.

 

책보를 풀어 마루에 던져놓고 부엌에 들어가니

커다란 양푼에 술지게미에 사카린을 타서

누나, 형, 동생들 둘러앉아서 퍼 먹고 있다.

나도 숟가락을 들고 대들어 퍼먹으니

달콤하고 씁쓰레한 것이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배 고파 출출한 판에 배가 부르도록 온가족이 실컷 퍼 먹었다.

 

처음 먹어 보는 음식이기에 멀건 죽보다는 훨씬 좋다.

모든 가족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곱기도 하다.

불룩 나온 배를 안고 일어서니 몸이 비틀 넘어질 것 같다.

방으로 들어오니 아버지도 술에 취해 주무시고 계신다.

하늘이 빙빙 돈다.

방바닥이 울렁울렁 움직인다.

그냥 쓰러졌다.

 

얼마를 정신없이 자다 보니 속이 울렁이며 토할 것 같다.

엉금엉금 기어 문지방을 간신히 넘어 마당에 나와 억 억 토해냈다.

아~ 돈다.

하늘이 돌고 땅이 돈다.

집이 돌고 커다란 살구나무가 돈다.

 

뱃속 가득한 모든 것을 토해 내고 다시 엉금엉금 기어 들어오니

한 방 가득 아버지, 엄마, 형, 동생 모두가 서로 엉켜 곯아떨어져 있다.

그 사이를 비집고 나도 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몸을 마구 흔들어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아직도 몽롱한 정신으로 방안을 둘러보니

아뿔사~ 동생들의 입 앞엔

술 냄새가 지독한 술지게미가 한 사발씩 쏟아져 있다.

잠들어 누운 채로 토한 것이다.

 

모두 깨워 간신히 일어나

아침밥도 못 먹고 그냥 책보를 등에 둘러 메고 학교를 갔다.

학교 가는 길이 아직도 빙빙 돌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첫 수업시간,

숙제검사를 한다.

술찌게미에 취해 숙제를 했을 리 없다.

안 해온 사람 자진해서 앞으로 나오라는 선생님의 호령에

비틀대는 몸으로 나가니

눈을 휘둥그레 뜨신 선생님이 이 녀석 왜 그래? 하시더니

술 냄새가 풍풍 풍기니 다짜고짜 이 자식 술 처먹었네?

하며 들고 있던 몽둥이로 내리친다.

 

대가리에 소똥도 안 떨어진 자식이 숙제도 안 해오고

아침부터 술 처먹었다며 화가 머리끝까지 나셔서

사정없이 두들겨 패니 비틀거리는 내 몸은 쓰러지고 말았다.

왜 술을 먹었느냐는 다그침에

술지게미를 먹고 이렇게 됐다는 말을 듣고는 몹시도 미안해하신다.

 

점심시간.

선생님의 부르심에 숙직실로 불려가니

납작하고 이쁜 도시락을 펴서 내 앞에 내밀어 주시며 먹으라 하신다.

 

하얀 쌀밥에 계란 후라이 무장아찌가 들어 있는

맛있는 도시락에 괜찮습니다 라고 한번 사양한 끝에

달려들어 허겁지겁 퍼 먹었다.

 

아~

이렇게 맛 좋은 도시락은 난생 처음이다.

 

 

 

 

저자

 

저자 : 이종옥
1954년 충북 괴산군 청천 두메산골 가난한 농부의 칠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자랐다. 중학교도 다니지 못하다가 뒤늦게 재건중학교 1학년 과정만 마친 채 배움의 꿈을 키우고자 서울로 가출해 모진 고생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공장생활을 하면서 검정고시로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나이를 먹으면서 공장 직공으로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공장 동네의 아랫집 부부가 목장 꾸리는 모습을 보며 향후 목장을 운영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군 복무를 마치고 인천에서 잠깐 회사생활을 했고,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지으면서 젖송아지 두 마리로 목장을 시작했다. 농민 후계자로 선정돼 저리 자금을 받아 착유우 50여 마리의 중급 목장으로 운영하던 중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쉴 틈 없이 젖 짜고 사료를 줘야 하는 통에 목장 일을 그만두고 한우 비육으로 바꿨다. IMF 때 소값 폭락으로 큰 손해를 본 뒤 인삼 농사를 함께 시작했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가톨릭 신자로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노후에 조용히 산속에서 살기 위해 경북 상주시 화북면 속리산 문장대 부근에 속리산 산골짝 펜션을 지어 10여 년간 운영하다 건강이 안 좋아져 그만두었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고, 2006년 『창조문학』에서 입선을 해 틈틈이 써온 글을 모아 회갑 기념으로 수필집 『농부일기』를 출간했다. 지금은 두 아들을 분가시키고 아내와 함께 아흔이 넘은 노모를 모시고 텃밭을 가꾸면서 고향땅에서 살고 있다.

그림 : 이재연
1948년 충남 유성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배 과수원집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벼이삭이 누렇게 영글어 고개 숙인 들판 신작로 길을 등하교하며 서울로 갈 꿈을 키웠다. 대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여자라서 그만 학업을 멈춰야 했다.
두 아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수십 년을 보내다가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 뒤 다육식물에게 사랑을 주며 허전함을 달랬다. 어느 날 반려식물에게 예쁜 화분을 만들어주고 싶어 도자기를 배웠다. 그리고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넣고 싶어 일흔이 다 된 나이에 도서관 그림동아리 문을 두드렸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진 않았지만, 밥 먹고 손자 보는 시간도 아낄 만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다.
2017년 자서전 전시인 ‘기억의 재생’과 2018년 가을 ‘자화상 그리는 언니들’을 비롯해 그룹 전시에 몇 차례 참여했다. 요즘은 늦둥이 손주 육아일기와 동반식물 다육이 그림을 매일 그리고 있다.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처럼 그림 그리며 사는 게 꿈이다. 지은 책으로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