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umsy love

늦게서야 진정 어느것이 상대를 위해주는것인지...이별 2

다희풀잎 2010. 11. 24. 09:20

 

 

 

 

고3
미술학원을 다녔다..
그 곳에서 부터 친하게 지냈던 오빠가 있었다..
같은 고향이며 절친한 선배오빠의 친 동생이기도 한...

같은 대학 같은 과에 입학을 했다.
재수해서 들어와 나와 같은 학번 이였지만,
나는 오빠라고 불러 주었다..

집안 환경이 나와 비슷해서 우린 생각하는것도 많이 닮아 있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오빠는 부유한 형편에 대학 1학년때 자신만의 화실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사진을 좋아해서 조그만 암실도 갖추고 있었다..

워낙 내성적인 성격에 같은 과동기들하고는 거의 대화가 없었고,
학과 수업 빼먹는걸 밥 먹듯 했다..

나중에 어디갔다 왔느냐 물으면 '여행을 다녀왔다'는 짧막한 한마디
여행도 준비해서 가는것이 아니라,
담배 사러 나갔다가 슬리퍼 신고 입고 나온 차림으로 그대로 떠나는..
바람같이 떠나는 여행..

우리 둘은 본의 아니게 공식적인 과커플이 되고 말았다.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나하고만 대화를 하니
과에서는 그렇게 볼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 둘은 과친구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는 절대 아니였다.

그 당시 나는 만나는 남자친구가 따로 있었고,
그 오빠는 단지 친한 고향오빠 정도 였다..
아무런 말이나, 행동을 해도 모두 이해해주고 받아주는...
그냥 우린 친 오누이 같은 사이였다.
단 한번도 그 오빠를 이성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진과 기타와 하모니카를 좋아했고,
늘 조용한 말투, 소리내지 않고 웃는 조용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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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때
오빠가 사라졌다..
또 여행을 갔나보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 학교로
오빠의 형이 찾아왔다..
혹시 소식을 모르느냐고...
아마 여행을 간게 아니냐고 했더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것 같다고 했다.
화실을 정리하고 종적을 감췄다고...

얼마뒤 형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오빠가 군대를 갔더라는것이다..
군대에서 입고 간 옷들하며 소지품이 도착했다고..
그래서 가족들이 알았단다..공군 지원해서 입대 했다는 걸..

가족에게 아무말도 없이 군대를 가다니...
참 특이하다 싶어  그 소식을 접하면서도 웃음만 나왔다..



대학 4학년때 수업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우연히 오빠를 만났다.
군대에 있어야 할 사람이 버스를 타고 있다니...
우린 버스에서 내려 작은 찻집에 갔다.

몸이 좋지 않아 제대를 일찍 했다는게 아닌가...
그때 내가 알았어야 했다..
오빠의 몸 상태를...
그런데 바보같은 나는 그냥 몸이 안좋았나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졸업후
내가 운영 하는 학원 근처에 오빠는 개인 화실을 열었고,
오빠는 대학 복학을 했다.
우리는 오며 가며 서로의 일터에 들러 같이 밥도 먹고,
서로 좋아하는 노래도 불렀다.
이번에는 오빠 혼자 생활하는것이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 였다.

매운걸 좋아하는 나는 늘 매운 메뉴로 음식을 만들어 오빠에게 먹였고,
오빠는 나보고 학원 걷어치우고 식당하는게 어떻겠냐며,
내 음식을 칭찬 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오빠가 여행 떠난 날들을 제외하고 매일 만났다.

그런 어느 날 여행을 가는데 이번에는 꽤 긴 여행이 될것 같다고
잘 지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오빠가 여행을 떠난 지 한달쯤 지나 내  꿈속에 나타났다..
새들이 지저귀고,꽃들이 만발한 꽃밭에 오빠가 웃으며 서 있는게 아닌가
넘 밝은 모습에 이번에는 소리까지 내며 웃고 있었다.

꿈에서 깬 아침 오빠의 본가에 전화를 했다.
이번 여행은 넘 긴것 같다고 혹시 연락 왔냐는 내 물음에
말을 못하며 흐느끼며 우는 오빠의 새엄마 목소리에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진이는 죽었단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는 줄 알았다.

죽었다니..죽었다니.... 
이럴수는 없다...


나중에야 알았다.
내 언니가 오빠의 임종을 지켜봤다는걸..
임종전에 덮고 있었던 새 이불은 언니가 가져다  준것..
그동안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건.
내가 감당해야할 고통을 차마 볼수가 없어 나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어린시절 엄마의 죽음 이후 얼마나 긴 시간 힘들어했는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오빠로서
떠나기 전부터 내 눈물을 바라 볼 자신이 없었다고...

하지만 내게도 오빠를 떠날 보낼 시간은 주고 가야지 ....

떠나고 난 후에야 알았다..
한번도 좋아한다, 사랑한다 입 밖으로 말한적 없었지만,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넘 가까이 있다 보니 그걸 몰랐을뿐이다..





그후 꿈속에서 오빠를 자주 만났다.
어느날 꿈에서는 내가 물었다.
오빠는 죽었다는데 왜 이렇게 내 앞에 있는 거냐고..
그랬더니
"나 안죽었어. 임마!  엄마 한테 일부러 나 죽었다고 말하라고 그랬어."
하면서 빙글빙글 웃는게 아닌가..

잠에서 깬 나는 어쩌면 그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고 이른 새벽에
오빠네집에 전화해서
죽지 않았는데 나를 놀린것 아니냐며 그집 가족들 마음을 아프게 했다..

찍어준 사진이며 내 모습을 그려준 그림들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데
나는 그 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밤 이면 꿈에서 오빠를 만나곤 했는데..
항상 밝은 모습 환한 태양아래 진귀한 꽃들 틈에서  웃고 있었다.
우리는 낙원 같은 꽃밭에서 어린 아이 마냥 뛰어 놀았다.

오빠를 만난 날은 행운이 찾아와서 더 즐거운 날로 만들어 주었다.

남편과 결혼하고 난 후에도 10년 이상을 나는 오빠를 떠나보내지 않았다..
힘든 날이 있으면 꿈속에서 오빠가 나를 만나러 와주길 기다리며
잠을 청했다.

그런데..
어느 날..
꿈속에서 나와 오빠는 꽃길에서 두사람만의 결혼식을 치뤘다..

잠에서 깬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남편도 아이들도 있는데
꿈속에서라도 결혼은....


친구 동생이 스님이다..
내가 친구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스님이 그러더라는것이다...

이제  떠나보내라고...
산사람과 죽은 사람은 엄연히 있어야 할 곳이 다른데
그만 보내주라고...

그날 나는 오빠가 찍어준 사진과 그림을 불태웠다..

그때 처음으로 돌아 가신 엄마께 넘 죄송했다..

나를 낳아준 엄마는  그리워하지도 않으면서 오빠만 그렇게 애절하게
그리워했다니....
엄마 죄송해요...죄송해요...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한없이 울었다...



거짓말 처럼..
그 이후부터 오빠 꿈을 꾼적이 없었다..


내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났다면,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이별을  하며  떠나갔다면
상대가 내 생각만 하며 사는것은 결코 원하지 않을것 같다..
행복하게, 밝게 웃으며 살아가기를 바랄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면서,
나로 인해 눈물 짓고,
슬퍼하며 살아가기를 바라겠는가...

오히려 그만 나를 잊어주길 바랄것 같다..

나는 늦게서야  진정 어느것이 상대를 위해주는것인지,
사랑하는 방법인지 깨달았다.